프랜시스 후쿠야마 - 푸틴의 전쟁과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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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후쿠야마 - 푸틴의 전쟁과 자유주의

던캔도나스 2022. 3. 5.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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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에 대한 깨달음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1989년의 정신이 아직 살아 있음을 세계 각지에 보여주었습니다. 이 덕분에 잠자고 있었던 우리들 또한 다시 깨어나고 있습니다."

"The Ukrainians, more than any other people, have shown what true bravery is, and that the spirit of 1989 remains alive in their corner of the world. For the rest of us, it has been slumbering and is being reawakened."

책 "역사의 종언" 으로 유명한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사설에서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보면서 언급한 마지막 문장입니다. 1989년의 정신이란 무엇이고, 우리들은 무엇을 놓쳤기에 다시 깨어난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종언된 역사의 재시작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여겨집니다. 냉전 시대의 새로운 시작, 자유주의의 종말 및 전체주의로의 회귀, 또는 "역사의 종언의 종언" 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공격은 우크라이나 밖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통합하고, 1990년대부터 나토에 가입했던 동유럽 국가를 다시 구소련의 형태로 재집결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그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리라는 점은 이미 분명합니다. 빠르고 쉬운 승리를 단언했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국가적 단결과 꺾이지 않는 용기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푸틴이 키이우를 탈취하고 젤렌스키 대통령을 축출하더라도 장기적으로 4천만 명 이상의 분노한 시민들을 군사력으로 제압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더욱 똘똘 뭉친 민주주의 세계와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공짜 자유주의는 없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는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당연시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자유주의는 끊임없이 투쟁하여야만 얻을 수 있으며, 경계를 늦추는 순간 사라질 것입니다.

오늘날의 자유주의 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푸틴에서 유래된 것이 아닙니다. 얼마 전부터 자유주의는 좌파와 우파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는 2022년 "세계의 자유(Freedom in the World)" 설문조사에서 자유주의의 수치가 전 세계적으로 16년 연속 하락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세력이 부상하고, 미국과 인도 등 오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포퓰리즘, 반자유주의, 민족주의로의 전환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Freedom House의 2022년 세계의 자유 지수. FT에서 재인용.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자유주의는 17세기에 처음 발표된 사상으로, 개인에 대한 정치권력의 영향력을 낮추고 폭력을 통제하려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자유주의는 사람들이 어떤 종교를 따라야 하는지와 같은 중요한 선택들에 대해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다른 시민들의 견해를 용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대의 자유주의는, 법치주의와 정부에 대한 헌법의 통제를 통해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이 보장하는 개인의 존엄성과 권리 중에는 재산을 소유하고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이 권리는 현재 세계의 경제 성장 및 번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자유주의의 위기

하지만 자유주의 시스템은 현재 많은 부분에서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포퓰리즘으로 뭉친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주의 사회의 개방적이고 다양한 문화를 반대하며, 한 국가가 동일한 민족과 동일한 종교를 공유했던 시대를 동경합니다. 한편, 진보주의자들은 자유주의로 인해 사회 내 공감대 형성 및 정책수행이 너무 느려졌음을 지적하며, 자유주의가 세계화의 결과로 나타난 경제적, 인종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언론의 자유와 정당한 절차를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자유주의적 우파와 좌파 모두 자유주의가 기초로 하고 있는 과학의 전문성에 불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불신은 코로나 시대 백신, 공중 보건 정책에 대한 불신을 넘어 보다 일반적으로 회의론을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한편, 인터넷은 허위 정보와 증오심 표현을 퍼뜨리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특히 정보의 신뢰성보다 조회수 및 화젯거리 만을 찾는 대형 인터넷 플랫폼들에 의해 조장되었습니다.

왜 자유주의는 위기를 맞게 되었을까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반세기 동안 자유주의 세계 질서는 개방된 세계 경제를 활용하면서 경제 성장을 촉발시키고 빈곤을 감소시켰습니다. 지금까지 국가 내외부적으로 자유주의를 활용한 덕분에 재부상한 중국 또한 이에 해당됩니다.

자유주의의 새로운 해석

그러나 자유주의는 수년에 걸쳐 재해석되었고 결국 자기 파괴적인 모습으로 발전했습니다. 전후 초기의 경제적 자유주의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신자유주의로 변형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시장은 숭배를 받았고 국가는 점점 성장과 자유의 걸림돌로 적대시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사상의 지배를 받는 선진국들은 복지 국가와 규제를 축소하기 시작했고 개발도상국에게도 이와 똑같이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공공 지출과 복지의 삭감은 시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완충 장치를 제거하여 지난 두 세대에 걸쳐 불평등을 크게 증가시켰습니다.

자유주의에 대한 변형된 해석은 사회적 규범과 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개인의 선택과 자율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춘 나머지, 많은 전통 문화와 종교 기관의 권위를 훼손했습니다. 동시에 자유주의가 서양 백인 남성 이성애자로 대표되는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라는 주장이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진보적 가치관"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지금껏 소중히 여겨온 공동 가치를 파괴하고 극단적인 다양성을 지지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자유가 없어야 깨달을 수 있는 자유주의의 가치

역설적으로, 자유주의가 없는 세상의 삶을 경험할 때 자유주의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한 세대 이상이 지났고 많은 사람들이 자유주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미덕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전쟁과 전체주의 독재에 대한 기억은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희미해졌습니다. 이 상황에서 몇몇 사람들은 전쟁을 방지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현 체제를 폭정이라 비판하고 있고, 정부의 마스크 착용과 코로나19 예방 접종 명령이 히틀러의 처우에 필적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는 진정한 독재의 경험이 없는 안전하고 안일한 사회에서만 나올 수 있는 생각입니다. 

게다가, 정치적 주장을 낮추고 다양한 견해에 대한 관용을 요구하는 자유주의는 단일 종교, 단일 민족 또는 전통에 기반한 강력한 공동체를 원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허함 속으로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러시아, 중국, 시리아, 베네수엘라, 이란, 니카라과 등 국가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반대하고 독재권을 유지하려 합니다. 또한 이들은 상호 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해 서로가 정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의 무너지고 있는 베를린 장벽(Berlin Wall)

1989년의 정신은 죽지 않았다

이것이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평화로웠던 키이우와 하르키우에 대한 러시아의 포격은 사람들에게 반자유주의 독재의 결과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푸틴의 러시아는 이제 자국 국민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하더라도 유럽 질서 전체를 뒤집으려는 불량국가로 간주됩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이런 러시아와 필사적으로 싸우는 용감한 국가로 국제적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나토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으며 기존 러시아에 우호적이었던 독일 또한 국방예산을 두 배로 늘리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할 의향이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전쟁이 끝나도 자유주의가 가야할 험난한 여정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는 이 전쟁을 보며 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 투쟁하고 서로 도와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1989년의 정신이 아직 살아 있음을 세계 각지에 보여주었습니다. 이 덕분에 잠자고 있었던 우리들 또한 다시 깨어나고 있습니다.

이 글은 Financial Times 어제 기사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사설을 직접 인용, 번역했습니다. https://www.ft.com/content/d0331b51-5d0e-4132-9f97-c3f41c7d75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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