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영화 이터널스(Eternals) - 꼼꼼한 밑그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화 ‘이터널스(Eternals)’를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마블 영화의 팬은 아니지만 ‘노매드랜드’를 연출한 클로이 자오가 감독으로 참여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블과 클로이 자오의 만남은 어떨지 궁금해서 보게 됐습니다.

다르긴 다르네, 지금까지와는

영화 후기를 한 마디로 하자면 “뭔지 몰라도 지금까지와 다르긴 다르네”입니다.

클로이 자오의 생각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라는 느낌보다는 마블 영화에 나온 적 없는 다양한 배우들이 동시에 첫 출연하는 작품인 만큼 캐릭터마다의 서사 부여에 신경을 쏟은 밑그림 같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마블은 감독에게 큰 역량을 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MCU라는 거대한 세계관을 하나로 이어야 하는 영화 특성상 감독 한 명이 튀어버리면 세계관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라이언 존슨을 떠올려봅시다)

노잼이라고 느낀 분들은 어디서 그렇게 느끼셨는지 충분히 공감 가고, 재밌다는 분들도 어디서 그렇게 느꼈는지 이해가 되는 작품입니다. 일단 이 작품의 성향을 좀 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터널스는 주인공 한 명마다 서사를 부여하는 영화를 개별적으로 만들었던 어벤져스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DCEU의 ‘배트맨v슈퍼맨’처럼 주인공 한 명마다 영화를 따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전체가 등장하는 영화를 먼저 내놓았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배트맨v슈퍼맨은 개인적으로 재밌게 본 작품인데 서사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더랬지요. 이번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서사를 따로 쌓지 않는 이상 마블도 별수는 없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면 나름 훌륭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유튜브 등에서 일부 리뷰를 보면 까는 게 미덕인 듯 까대기 바쁜 경우를 많이 보는데 우리 조금만 마음을 열고 삽시다. (제가 마블 세계관을 잘 몰라서 괜찮았나요?)

다양성의 끝판왕, 이터널스

이터널스의 특징 중 하나는 정말 다양한 주인공이 많이도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다양한’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인종과 배경, 성별, 성적 지향, 장애여부까지 이 모든 것을 한 작품에 녹이다니 대단하게도 느껴집니다. 일부는 수화, 동성애 등에 대해 필요 없는 PC 범벅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듯한데, 우리가 백설공주, 신데렐라를 보고 자랐듯 많은 아이들이 마블 영화를 보고 자랄 것을 생각하면 그리 필요 없는 설정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만큼 이들이 뭉치는 데도 참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영화 상으로 주인공이 다 모이기까지 약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던 것 같은데 이 과정이 약간은 지루하고 졸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각 한편씩 영화를 만들어야 할 서사와 캐릭터 특징을 이 짧은 시간 안에 설명해낸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뭉치고 난 다음에는 볼거리가 많기도 하고요. 나름 친절한 설명 덕에 배경지식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본 저 같은 사람도 특별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쿠키 영상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이터널스를 봐야 하는 이유 +) 쿠키영상

*쿠키영상에 대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터널스가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어도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어쨌든 이 친구들이 다른 마블 영화에서도 나올 것 같거든요. 마블이 노리는 것도 이런 것이었겠죠. 어떻게든 여러 작품을 엮어서 하나도 안 보고 넘어갈 수 없게 만드는 것.

영화의 쿠키는 총 2개입니다. 첫 번째 쿠키는 타노스의 동생인 ‘스타폭스’ 역으로 해리 스타일스가 출연한다는 것, 두 번째 쿠키는 세르시의 현 남자 친구인 존 스노우 아니 키트 해링턴이 블랙 나이트라는 점입니다.

타노스에게 동생이 있는지도 몰랐고, 블랙 나이트가 누군지도 몰랐습니다만. 타노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동생에게 유전자 몰빵 당하고 슬펐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농부로서 성실히 일하고 지구를 구하려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재평가가 필요한 인물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블랙 나이트는 정말 잠깐 등장하는 주인공 남자 친구 역할로 존 스노우가 나오다니 의외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네요.

영화 이터널스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