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작가의 에세이 -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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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작가의 에세이 -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조슬린 2022. 3. 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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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글을 좋아한다. 정지음 작가의 첫 작품 <젊은 ADHD의 슬픔>을 브런치에서 처음 봤을 때, 나는 이 작가의 글에 첫눈에 반했다. 앉은자리에서 그녀의 글을 몽땅 다 읽었고 호기심은 애정이 됐다.

 

ADHD 작가의 이야기

정지음 작가는 성인이 되어 ADHD 판정을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이 질환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녀는 담담하고 유쾌하게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스스로를 치유한다. 글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자조와 절망, 우울을 말하지만 독자를 어둠의 구렁텅이로 함께 끌고 들어가지도, 불행 배틀을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아 비판이 너무나 신랄하고 왁자지껄한 나머지 익살스럽게 느껴진다. 낄낄거리는 사이 나도 모르게 쓴 맛을 삼키는 블랙코미디 같다고나 할까. ADHD 특유의 발산하는 에너지가 글에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신선한 표현들로 승화된 것 같았다.

출처 : 밀리의 서재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는 정지음 작가의 두번째 책이다. 작가가 친구, 가족, 이웃 등 과의 관계에 관해 쓴 에세이를 묶어 만든 책인데, 밀리의 서재에서 보자마자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가 여러 구절에서 멈추고 나도 모르게 하이라이트를 쳤다. 마음속에 저장하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 많았다. 작가 특유의 신선한 표현들. 에세이임에도 그 어떤 가공된 상상력보다 재미있고,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어째서 나를 뺀 세상은 보송보송 기쁠까. 사람들은 어떻게 성취하고 양보하고 인내하는 식으로 충만해질까. 나는 궁금하지 않은 질문에 치이다 의지의 골절을 느낀다. 함께 누운 우울이 사고의 뼈를 다 부수니까 대낮에도 혼자서는 침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146p
자유와 방종 사이에서 결론을 내리지 않는 삶, 그런 모호함을 유지할 작정으로만 굴러가는 삶도 있는 것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즐거운 나의 집 속에. -172p
작은 고난에도 쉽게 꼬마가 되는 나는 서른이 어른이라는 데 동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 생각에 서른이란 그저 3과 0이 갑작스레 한편을 먹고 내게 민망을 세뇌하는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서른에 당당하긴 어렵고 수치심에 사로잡히긴 쉬운 것이었다. 때로는 서른에 부과된 의무가 오히려 서른의 묘미를 망치는구나 싶기도 했다. 서른이 보장하는 것은 겨우 서른하나뿐일진대 어차피 올 순간들이 두려워 손톱만 씹게 되니 말이다. -216p
"너도 너 같은 애 낳아봐라." 어쩌면 이 대사는 부모가 자식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경멸 아닐까? 나를 낳은 사람이 어떤 식으로 곤란해졌는지 아는데, 같은 길로 빠지라니 이보다 악담일 수 없다. -183p
새로운 친구들이 많이 생겨도, 너 하나 없다는 이유로 나는 항상 조금 비어 있어. -198p

특히, 작가가 친구에게 쓴 편지 '영주에게'는 읽고 또 읽었다. 나에게도 영주라는 오랜 친구가 있었던 것처럼, 작가의 감정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경험이었다.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내적 친분을 느끼게 된다. 

작가가 ADHD로 겪은 인생의 수많은 난관에 모두 공감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에 대한 회의와 우울, 열등의식은 아마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ADHD이거나 비 ADHD이거나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내가 맘에 들었던 부분은 이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였다. 작가는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삶, 관계에서 자포자기하지 않는다. 또 그렇다고 여느 자기 계발서에서처럼 노오력과 근면성실을 통한 극복으로 간주 점프 후 비약적인 낙관으로 마무리하지도 않는다. 그저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을 마주 보고 돌아보고 인정하고 이해할 뿐이다. 그리고 그 상황과 자기에 대한 객관화 방식이 대단히 창의적이다. 독자는 글에 고스란히 담긴 작가의 이 익살스러운 자기 객관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감탄과 함께,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스스로의 미침을 허용하는 인간만이 타인의 광기에도 조금쯤 유연할 수 있었다. 자기가 미쳤듯이 저 사람도 미쳤음을 이해하고, 그가 미칠 힘이 떨어져 제정신이 되기를 기다려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나 한 몸 미쳐보는 일은 다시 가장 이타적인 행위가 되었다. (중략) 모쪼록 이해받지 못할수록 즐거운 삶이라 생각하면서, 즐거움은 고단함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고 얼버무리면서.  -15p 

갖가지 다른 이유로 관계와 인생이 고된 모든 이들에게 이 에세이를 추천하고 싶다. 나도 언젠가 이렇게 마음에 쉽게 들어오고, 쉽게 나가지 않는 글을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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